4대 프로 스포츠 연달아 승부조작 파문
검찰 조사 본격화, 핵심인물들 신병 확보

연초부터 국내 4대 프로 스포츠가 잇달아 승부조작 파동에 연루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가 첫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이번에는 배구와 농구는 물론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까지 승부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것이다. 현재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검찰청은 지난 24일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을 브로커에게 소개한 대학야구 선수출신 김모(26)씨의 신병을 확보,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김 씨가 프로배구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된 브로커 강모(29)씨와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때 구속된 또 다른 브로커 김모(25)씨 등에게도 경기 조작을 의뢰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프로야구 본격 수사 개시
프로스포츠 승부 및 경기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검 강력부는 지난 24일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을 브로커에게 소개한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으로 대학야구 선수 출신 김모(2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씨는 또한 프로배구 승부조작과 관련해 구속된 브로커 강모(29)씨와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때 구속된 또 다른 브로커 김모(25)씨에게도 프로야구 경기 조작을 공모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학야구 선수 출신인 김 씨는 브로커 강 씨에게 자신의 동향(제주) 후배이자 고교후배인 LG 김모(23)씨 등 2명의 선수를 소개시켜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검찰은 김씨가 고교 및 대학에서 선수생활 중 알게 된 다른 프로야구 선수를 경기조작에 끌어들였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김 씨가 강 씨에게 현역 야구선수들을 소개하면서 금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지금까지 구속된 브로커 강 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프로야구 경기조작과 관련한 진술을 확보했으나 피의자의 진술 이외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경기조작 6차례에 걸쳐 제의
한편, 대구지검은 브로커 강모(29)씨가 LG트윈스 구단의 박현준(26)·김성현(23) 두 선수에게 모두 6차례에 걸쳐 경기조작을 제의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특히 지난 2010년 5월쯤 서울 강남의 모 식당에서 박 씨를 만나 경기조작을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강 씨의 계좌를 집중 추적하는 한편, 박 씨 등이 차명계좌로 사례금을 받았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 중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프로배구 승부조작에도 관여한 강 씨가 구속된 배구선수 염모(30)씨를 매수할 때도 자신의 명의로 된 현금카드를 전달, 사례금을 챙기도록 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 씨 등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사례금을 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LG트윈스 외 다른 구단 선수 5명을 대상으로 경기조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방문 면담을 했으나 조사 대상 전원이 연루 여부를 강력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를 입증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오는 선수는 즉각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배구 수사결과 이달 발표
한편, 대구지검은 당초 2월로 예정됐던 프로배구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이달로 연기한 상태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 상무선수 1명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 수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수사결과 발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구지검 박은석 2차장 검사는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군 검찰단의 상무팀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쪽과 긴밀한 수사 공조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현재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군 검찰단의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프로배구 승부조작사건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남자 선수들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됐으며, 브로커들를 상대로 추가 승부조작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17일 KEPCO가 아닌 다른 팀 소속 현역 선수 1명과 전직선수 2명에 대해 추가 소환조사를 벌인 바 있으며, 소속팀이 어디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일부 선수들이 불법도박 베팅에 가담한 사실과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가 또 다른 선수에게 승부조작 정보를 넘겨 베팅을 유도한 의혹과 관련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연예계로도 불똥 튀어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파문 불똥은 연예계로도 튀었다. 대구지검이 이번에는 유명 개그맨 A씨가 이번 사건의 핵심 브로커인 강모(29)씨와 1억 원이 넘는 금전 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검찰은 또한 강 씨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A씨와 3000여만 원씩을 수차례에 걸쳐 주고받은 사실도 확인했으며, 강 씨 소유 외제차량도 A씨의 명의로 된 사실을 포착했다.
A씨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략하는 인기 개그맨으로 승부조작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대중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A씨 측은 “강 씨와는 5년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브로커인지 몰랐다”며 “금전 거래 사실은 있지만 승부보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승용차도 강 씨가 자신의 명의로 차를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명의를 빌려준 것뿐이다”고 의혹을 해명했다.
한편, 경기조작에 유명개그맨이 연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당사자로 불법 도박으로 한 차례 물의를 빚은 바 있는 KBS 개그맨 김준호가 지목되는 해프닝이 일었다. 유명개그맨 A씨의 기사가 보도된 지난달 22일, 이날 김준호의 이름은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다.
김준호는 이에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연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억울함 심경을 토로했다. 김준호는“승부조작 연루 의혹에 어제만 해도 전화를 500통이나 받았다”면서 “암흑에 있던 사람이 자숙을 통해 열심히 해보려하는데 너무 못 살게 구는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김준호는 “내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건 나는 구기 종목을 싫어한다. 배구, 농구, 축구는 다 싫어하고 당구나 탁구를 좋아한다”며 재치 있게 해명했다.

“프로는 돈이다”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
프로 스포츠에서 벌어지는 승부조작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며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개연성이 있다. 지난 1960년대 한창 잘 나가던 프로레슬링이 한 유명 선수가 사전 승부담합이 이루어지는 관행을 공개하고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폭탄선언을 하는 바람에 인기가 급전직하, 사양길로 접어든 전례가 있다.
더군다나 프로는 일단 돈이 우선하고 승리지상주의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쨌든 이번 승부조작 사건의 진원지인 프로배구는 이번 사태로 장래가 유망했던 선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영구제명 당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8월 40명의 프로축구 선수와 7명의 선수 출신 브로커 등 총 47명이 협회로부터 영구제명 조치를 받은 지 불과 6개월 만에 터진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프로배구연맹은 “선수 개개인이 당시 처한 상황이 어렵든 좋든 그 부분은 개인이 현명히 판단해야 한다”며 관련 선수에게 승부조작의 귀책사유가 있음을 지적하고 관련 선수에 대해 영구제명 등의 중징계를 하겠다고 했다. 연맹은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축구의 경우에도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 근본적인 원인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선수들에 대한 중징계 결정으로 모든 것을 일단락 지어 버렸다.
물론 모든 선수가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정신과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선비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해 도덕적으로 모범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를 중요시하고 목표지향적인 엘리트 스포츠 문화에서 선수 개개인에게만 모든 짐을 떠맡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각 종목별 협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선수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선수들을 지원하고 길을 열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 ‘스포츠토토’
지난해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스포츠 전문가들은 이것이 단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지적했다. 돈을 놓고 배팅을 하는 ‘스포츠토토’가 엄연히 시행되는 마당에 프로축구는 물론,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인기 프로스포츠는 언제든지 돈을 벌기 위한 불법 승부조작의 개연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불과 채 1년도 되지 않아 우려했던 파문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건의 파장이 훨씬 더 크고 깊다. 프로배구에서 사상 처음으로 승부조작이 밝혀진 데 이어 프로야구에서도 승부조작 사건이 적발됐다. 프로배구는 관련된 선수와 브로커들이 구속되거나 영구제명 등의 중징계를 받았으며, 프로야구는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게다가 프로농구까지도 승부조작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프로스포츠 전반에 승부조작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프로화의 길을 걸었던 국내 스포츠는 2000년대 들어 스포츠 경기결과를 분석하고 예측한 후, 배팅해 실제배당금을 지급하는 ‘스포츠토토’가 시행되면서 불법적인 승부조작이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승부조작은 돈이 궁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려는 브로커들의 사전담합의 결과물이다. 주로, 고액 연봉을 받다가 군 복무를 위해 상무에 입대해 돈이 필요해진 선수들에게 브로커들이 접근, 상무 팀을 중심으로 대규모 승부조작이 자행됐다. 프로축구와 프로배구가 그랬다. 
다만 여자배구와 프로야구는 조금 그 형태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승부조작이 훨씬 더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신속한 ‘승부조작 근절 대책’ 발표
이제 프로스포츠는 새로운 길목에 들어섰다. 몰락하느냐 회생하느냐는 중요한 단계에 놓인 것이다. 과거 프로레슬링이 무너지듯, 승부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면 돌아오는 것은 팬들로부터의 철저히 외면뿐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승부조작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고 신뢰감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팬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하편,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신속히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 대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선수들에게 연 4회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내부 고발 포상금을 최고 1억 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조작 관련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 영구제명하고 구단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리그 퇴출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암행감찰제도'를 도입하여 상시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불법스포츠도박 사이트 근절을 위해 합동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더 이상 팬 우롱하지 말아야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뤄야 할 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하고 돈을 챙긴 것은 팬을 속이고 우롱하고 배반하는 짓이다. 프로 스포츠는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부 조작은 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추악한 범죄다. 그렇지만 승리만을 추구하는 이 세계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는 데 내몰린 선수들은 자칫하면 돈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다.
따라서 승부조작을 근절하려면 다양한 대책들이 세워져야 한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선수들을 위한 인성과 위험관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경기외적인 지원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수들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승부조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건 발생 후의 '규제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또 선수 개인에게만 잘못을 추궁하기보다는 체육계가 머리를 맞대고 선수들을 위한 경기 외적인 지원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 터진 다음 선수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언제든 같은 사건이 재발하는 악순환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젠 다시금 선순환을 일으켜야 할 시점이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