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개념 판사’ 서기호·이정렬 중징계
양승태 대법원장 리더십에 빨간불
서기호 판사 “쫓겨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법원이 서기호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데 이어, 결국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에게도 법원조직법 위반을 이유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가했다. 이른바 ‘개념 판사’로 불리는 두 법관은 소셜네트워크(SNS)에 반정부적인 글과 재판부 합의 내용 공개 등 정치적 의견을 올렸다 이것이 빌미가 돼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 젊은 판사들에게 보수성향이 짙은 법조계가 일련의 보복성 조치를 취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지난 9월 취임 후 줄곧 소통을 강조해온 양승태 대법원장의 리더십 역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비난의 화살이 일제히 사법부를 향한 지금, 법원은 또 한 번 부러진 화살을 준비하고 있다.

의심이 가는 근무평정의 객관성 논란
이른바 '가카 빅엿'으로 논란이 된 서기호 판사는 결국 퇴임되었다. 그렇지만 그 후폭풍은 여전하다. 상당수의 동료 판사들이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3년 만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일 판사회의가 열리고 있으며 또한 전국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서기호 판사는 2010년부터 서울북부지방법원의 판사로 재직해 왔으며, 지난 10일 근무평정 하위 2%라는 사유로 대법원으로부터 재임용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이에 서기호 판사는 지난 17일 오전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근무평정 7가지 항목 중 사건처리능력만 유일하게 객관적인 자료이고, 나머지 6가지 항목은 법원장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이다.”라며 근무평정의 객관성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실제로 판사들의 재임용 심사는 10년 마다 이뤄지며 2005년부터는 상, 중, 하의 방식으로 평가된다. 서기호 판사는 “10년을 놓고 보면 중이 5번, 하가 5번이다. 2008년엔 사건처리율 1위, 조정률 2위를 차지했고 나머지 경우에도 거의 평균치였다. 하가 5번 나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최근 근무평정이 낮게 나온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재임용 탈락
서기호 판사는 지난 2009년에도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던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당시 법원 게시판에 비판의 글을 올린 바 있으며, 이후 판사회의를 주도하며 볍원장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제기해 왔다. 이와 관련해 서기호 판사는 “그 때로부터 연속으로 하를 받은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법원에서 연도별 근무평정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해 12월 페이스북에 올린 대통령 비하 발언이 최근 근무평정에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냐는 앵커의 질문에 서기호 판사는 “평정에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 때문에 결국 재임용 심사 대상자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까지는 오로지 근무성적만 이유로 재임용 심사를 받고 탈락한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이번 재임용 탈락이 일반적인 사례가 아님을 강조했다. 실제로 1988년 판사 재임용제도 도입 후 최근까지 재임용에서 탈락한 판사는 1993년 신평, 1997년 방희선 등 3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쫓겨난 것이 아니다
서기호 판사는 지난달 17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본부 주최로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정문에서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 참석했다. 서 판사는 이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파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렇지만) 이번 결정은 정당하지 않다. 나는 10년 단임제를 마치고 잠시 휴식하러 가는 것"이라며 섭섭한 소회를 밝혔다.
서기호 판사는 이어 “이번 심사과정에서 형식적 법치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됐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나름대로 구색을 갖춰 근무평정에 따른 법적 심사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서 판사는 또 “일반 기업도 개인에게 근무평정이 다 공개되고 이의제기할 수 있고 상향식 평가가 되면서 상향식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데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원이, 가장 공정하고 투명해야할 법원이 근무평정을 비공개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법관재임용 심사의 허점을 꼬집었다.

‘국민 법복’ 수여 받아
이날 퇴임식에서는 서기호 판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인 '국민의 눈'이 '국민판사 임용식'을 열고 서 판사에게 '국민법관 임명장'과 '국민법복'을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기호 판사는 퇴임식 내내 밝은 표정을 유지했으며, 법원 앞 나무에는 법원직원들이 작별의 표시로 단 노란 리본이 나풀거렸고, 법원 직원 및 서 판사의 지인들이 노란 풍선과 플랜카드를 들고 서 판사를 맞았다.
'국민의 눈'은 법복에 법 법(法)자 대신 바를 정(正)자를 새기고, 안쪽에는 법관의 신분보장과 헌법의 소중함을 명시한 헌법 103조와 106조를 자수로 새겨 넣었다. ‘국민의 눈’은 “국민법관 서기호를 국민의 판사로 다시 재임용하려는 것”이라며 “법보다 상위의 개념인 정의에 대해 고민하자는 의미다”라고 법복 전달의 취지를 밝혔다. 또 법원 직원들은 플랜카드에 “판사님 잠시 휴정일 뿐입니다”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습니다” 등 위로의 메시지를 적었고,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순서도 가졌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30분 법원 소회의실에서는 법원 주최의 퇴임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서 판사의 참석 거부로 취소됐다. 본래 서기호 판사는 법원 퇴임식과 법원노조 주최 퇴임식을 모두 참석할 생각이었지만, 법원이 노조 측의 퇴임식 장소를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에 법원 퇴임식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판사는 아울러 법관 재임용 절차의 부당함에 맞서는 활동도 계속 해 나갈 것이라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복직을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동시에, 20여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법률지원단도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서기호 판사는 “법원내부의 비합리성, 불공정성, 불투명성에 대해 여러 사람과 연대해 반드시 짚고 가겠다"고 결의를 밝히면서 “소수 엘리트 법관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 '부러진 화살'을 언급하면서 "국민이 어려워하는 사법부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 ‘부러진 화살’이 뭐길래
한편, 법원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의 복직소송 재판 합의과정을 공개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가 지난 13일 이정렬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회의를 열고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원조직법 제65조 규정 위반을 들어 정직 6개월을 결정한 것이다. 이정렬 부장판사는 김명호 전 교수의 복직소송 항소심을 실제 맡은 주심 판사로서, 김 전 교수의 해임 판결이 도마에 오르자 해명 차원에서 합의 과정을 공개했다고 한다. 이 판사는 지난달 25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애초 재판부 합의 결과는 김 전 교수 승소였다"고 공개하면서 “이로 인한 불이익은 달게 받겠다"고 밝혔고, 법원조직법 위반으로 지난달 말 대법원에 징계가 청구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징계에 대해 사법부는 물론 여론에서도 조금 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변호사법 위반으로 정직 5개월을 받은 다른 판사들의 사례와 비교해도, 정직 6개월은 심하다는 의견과 함께, 일각에서는 SNS를 통해 정부에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판사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정렬 판사는 이번 징계결정 전인 지난해 12월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가사끼 짬뽕'을 패러디한 '가카새끼 짬뽕' 사진을 공개해 소속 법원장에게 서면경고를 받은 바 있으며, 서울남부지법 형사단독 판사를 맡고 있던 지난 2004년에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최초로 무죄를 선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징계 달게 받겠다”
법원 안팎에선 그동안 이 부장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통령을 비하하는 패러디물을 올리는 등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 이번 징계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이 부장판사에게 전달된 징계의결서에는 양정(징계의 적정성·균형성) 사유에 '서면경고장'이 명시돼 있어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했다.
일단 이정렬 부장판사는 징계의결서를 송달받은 16일 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징계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징계무효) 소송할 수는 있는데, 안 할 랍니다. 불이익 달게 받겠다고 했었거든요. 한 번 말했으면 지켜야죠. 구질구질한 거 싫습니다"라고 올렸다. 또한 트위터 소개에는 '6개월 백수'라고 적혀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 부장판사가 스스로 징계 결과에 대해 달게 받겠다고 했으니 다투고 싶지 않겠지만, 이의신청을 해도 대법원에서 단심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어차피 하나마나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렬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는 법원 정기인사 시점인 지난달 27일 자로 발효된 상태다.

들불처럼 퍼진 판사회의
서기호 판사의 퇴임과 이정렬 판사의 징계가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 내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확산중인 판사회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먼저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에 반발,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서울 남부·서부지법의 판사들이 단독판사회의를 개최해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단독판사 127명 가운데 무려 83명이 회의 개최에 동의했으며. 3개 법원 모두에서 '연임심사 제도와 근무평정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논의'를 주제로 회의가 이뤄졌다. 수원지법도 21일 판사회의를 열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수도권에만 그치지 않고 부산·광주·수원·춘천·청주지법 등 6곳에서 일제히 열렸다.
판사들이 이렇게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는 자신들 역시 서기호 판사와 마찬가지로 재임용에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판사들은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과 연임심사제도는 재판의 독립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객관적인 평가 자료의 수집, 다양하고 공정한 평가방법의 개발, 충분한 반론권과 불복절차의 보장, 중립적인 인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을 요구했다.
또한, 법관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해 일선 법원의 판사들이 논의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과 법관 인사제도개선위원회가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대표성을 지닌 각 법원의 판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대법원에 촉구했다. 그렇지만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자체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회의 도중 서기호 전 판사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관은 개개의 독립적 헌법기관
서기호 판사와 이정렬 부장판사 두 법관은 모두 각각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과 패러디 작품을 올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만약 이들이 대통령을 비하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다. 더욱이 그동안 대법원이 보인 이중적 태도를 보면 이런 의심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지난 2008년, 신형철 대법관이 '촛불시위' 재판의 배당 방식을 바꾸고 재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마냥 손을 놓고 있던 태도와 너무도 대조된다.
법관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판결 과정을 공개한 것과, 반대로 독립적 헌법기관인 다른 법관의 재판에 간섭한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잘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서기호 판사는 당시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행태에 항의하여 미운 털이 박힌 대표적 인물이다. 이번 재임용 탈락이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도 여기에 있다. 법은 ‘권력의 시녀일 뿐’이라는 대중들의 냉혹하고도 허탈한 평가가 서운할지라도 그 책임은 사법부에 있다. 또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역시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취재_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