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 김재철 사장 퇴진 요구
김재철 사장 “파업 원칙에 따라 대처할 것”
KBS·YTN까지 동참 움직임

MBC노조의 파업이 한 달 째 계속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MBC 보도국 보직부장들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참여한 데 이어, 간부급 사원들까지 김재철 사장 퇴진에 함께 나선 것이다. 이로써 파업에 동참한 간부급 사원은 총 135명으로 늘었다. 한편 지난달 21일에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더 이상의 파행은 김재철 사장이 MBC를 사상 최악의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남길 것”이라며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년 김재철 사장의 재임기간은 MBC에 유례없는 갈등과 추락의 시간이었다”고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MBC에 이어 KBS와 YTN도 파업에 나설 것으로 보여, 올 봄 방송가는 말 그대로 ‘패닉’에 빠졌다.

‘편파 보도’ 논란이 갈등의 씨앗
지난 2월 말에 시작된 MBC노조의 총파업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편파성 보도’를 둘러싼 MBC 보도국과 김재철 사장간의 힘겨루기가 원인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1일, MBC 노조는 자신들의 공식 사이트(www.saveourmbc.com)에 입사 20년차 이상 된 ‘고참’ 사원들이 성명서를 게재하며 다시금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김재철 사장 부임 후 39일 간의 장기 파업을 겪은 MBC는 또 다시 격렬한 갈등을 겪음으로써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20년 이상 MBC에 몸 담아 온 우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성명서를 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어 “노조에 대한 강경대응과 반발로 사태가 악화돼 MBC가 국가적 대사인 4.11총선 선거방송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무슨 명분으로 국민을 대할 것인가”라고 말하며 파업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표출했다.
또한, “내곡동 사저 축소보도,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 4대강 등 현 정부 주요 실책에 대한 비판 외면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공정성 침해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MBC의 신뢰도는 현저히 저하됐다. 과거에도 편파보도 논란이 있었지만 그 질과 양 면에서 김재철 사장 재임기간과 비교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고 우리는 단언한다”고 말하며 김재철 사장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노조는 끝으로 “김재철 사장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파업 4주가 되도록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고 노조를 업무방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더 이상의 파행은 김재철 사장이 MBC를 사상 최악의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남길 것이다”라며 “이제 김재철 사장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은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MBC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간부급 인사 동참
이번 성명에 참여한 이들은 1977～1991년 입사자 135명으로 국장 및 부국장 직급만 40여 명이며, 보직간부 역임자는 70여 명에 달한다. MBC 역사상 최대 규모다. 더욱이 이들 중 63%는 비조합원이다. 한편, 부장급 인사의 파업 참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MBC 라디오 '뉴스포커스' 앵커를 맡아온 황외진 논설위원이 20일 “회사 정상화에 대한 사측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며 노조에 가입해 파업에 동참했으며, 23일에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고 있는 최일구 부국장과 '뉴스와 인터뷰' 앵커 및 보도국 주말 뉴스편집 부국장을 겸하고 있는 김세용 부국장이 파업에 동참했다. 두 사람은 역시 “지난 2년간 뉴스 신뢰도 추락에 대해 보도국 부국장과 앵커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우리의 우리의 보직사퇴가 빨리 파업 사태가 마무리 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파업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에 앞서 보도국의 보직부장 3명도 보직을 사퇴하고 16일부터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 파업과 관련해 보직부장들이 기명 성명을 낸 적은 있지만 직접 파업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보직을 사퇴하면서 “이번 보도국장 인사를 통해 김재철 사장이 회사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보직을 수행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어 “보도국 논설위원과 부장들의 연이은 사퇴, 간부급 사원 135명의 사장 퇴진 요구 성명에 이어 주말 뉴스데스크의 간판 앵커와 편집 책임자까지 사퇴함에 따라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는 사실상 언론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김재철 사장은 현실을 직시하고 후배들의 뜻을 받아 당장 사퇴해야 할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해외 출장 중이던 조합원들도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해외를 돌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던 ‘나는 가수다’의 신정수 PD는 “회사로 복귀해 파업에 동참하라"는 노조 총파업지침 2호 확인 후 즉시 귀국했다. 20일 집회에 등장한 신정수 PD는 “인트라넷을 통해 파업 소식을 확인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늦게 참여한 만큼 더 열심히 파업 투쟁에 앞장 서겠다"며 “일하러 돌아온 것이 아니라 파업하러 돌아왔다. 후반전 15분을 남기고 들어가는 박지성 선수가 누구보다 열심히 뛰더라. 교체선수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프로그램 결방에 따른 시청자 불만도 적지 않아
그렇지만 파업이 계속됨에 따라 시청자 입장에서는 불만도 적지 않다. 프로그램 제작이 이뤄지지 않아 4주째 재방송이 계속될 정도. 특히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시청률이 연일 하락중이다.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방송된 '무한도전 스페셜'은 9.3%의 전국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8일 방송분의 9.5%보다 0.2%포인트 하락한 수치. 정상 방송됐던 지난 달 28일 방송에서 19.5%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토요일 예능 1위였던 '무한도전'은 파업 여파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파업 첫째 주인 지난 4일 방송분이 10.2%를 기록했으며 이후 11일 방송분이 10.1%를 기록하더니, 18일에는 결국 3년 만에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재방송을 감안하면 이 같은 시청률도 고무적이지만 독보적인 예능 1위였던 '무한도전'이 타 프로그램에 밀려 동시간대 꼴찌를 기록한 것은 아쉬운 상황이다. 특히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무한도전' 팬들조차 파업이 길어지자 '금단현상'이 일어난다며 제작진을 성토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무한도전 금단현상으로 생활이 재미없기까지 하다” “한 주의 낙이 사라졌다” “7년째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1달째 재방송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이 순간을 참아야 하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파업을 응원해야 한다” “4주째 결방은 시청자의 볼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시청자의 반감을 살 것”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일요일 예능의 강자인 '우리들의 일밤'은 '나는 가수다'가 막을 내리면서 26일에는 지난 설 특집으로 방송됐던 '나는 트로트가수다'를 재방송했다. 시청률은 5.1%로 동시간대 꼴찌. 또 '우리 결혼했어요' '위대한 탄생'도 위기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제작진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것이다.
또,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사극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역시 파업 여파로 결방 위기를 맞을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 ‘해품달’의 연출을 맡은 김도훈PD는 트위터에 “길어지는 파업의 여파로, 이번 주부터는 불가피하게 정상적인 후반작업이 어렵게 됐다. 힘들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는 글을 올렸다. ‘해품달’의 경우 MBC 자체 제작이 아닌 외주 제작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는 파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파업이 한 달 째 접어들자 촬영과 편집이 어려워진 것이다. '해품달'은 현재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목극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약직' 채용공고로 더욱 말 많아져
이렇듯 총파업으로 결방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MBC가 '분야별 전문기자(계약직)'를 공개모집한다는 공고를 올려 파문이 일기도 했다. 6개 부문 전문기자 선발은 MBC의 경력기자 채용 관례에 비춰 유례없는 대규모인데다, 전문기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도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MBC는 지난 10일 특보를 내고 "방송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자라는 인력을 충원할 생각"이라며 "걸핏하면 일터를 떠나는 잘못된 전통의 고리를 끊는 것만이 새로운 MBC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MBC는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뉴스 취재 제작과 촬영 편집 등을 담당한 계약직 보도국 뉴스 영상 PD 채용 공고를 냈었다.
문제는 이러한 MBC의 조치가 조금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측이 노조와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해석으로 보기도 한다. 한 네티즌은 “'通MBC'를 1년 계획으로 주창해놓고선 사원들과 '통'할 줄 모르고 종적을 감춘 김재철 사장. 비겁하게 계약직 사원 뽑아 방송 꾸려볼 꿍꿍이부터 할 게 아니라 파업에 나선 노조원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지금까지의 전횡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노조는 노조 소속 기자들이 제작하는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정상 제작하고 있다. 노조 측은 10일 노조특보를 통해 “보도국 영상 PD를 공모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고 전문기자와 PD라는 이름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려는 뻔한 수를 잘 알고 있다. 걸핏하면 체계적인 인사절차를 무시하는 잘못된 해사행위를 분쇄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MBC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모든 조합원은 확신한다”고 밝히며 사측의 행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KBS·YTN·연합뉴스도 동참 움직임
MBC에 이어 KBS도 총파업을 결의한 가운데, YTN 노조 역시 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 상태다. 먼저 KBS의 새 노조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16～23일간 ‘김인규 사장 퇴진’과 ‘부당 징계 철회’를 목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재적 1천64명 중 963명(90.5%)이 참여한 가운데 88.6%(853명)의 찬성으로 파업이 결정됐다. 반대는 104명, 기권은 6명이다. KBS 새 노조는 이번 달 6일부터 파업에 들어간다.
또, YTN 노조 역시 지난달 23일 부재자투표를 시작으로 29일까지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YTN노조는 지난달 22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해직자 복직과 배석규 사장 연임 저지를 위해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찬반투표를 결의했다. YTN 노조는 “배석규 사장이 '밀실 이사회'를 통해 연임 시도에 나선 데 대해 강력한 규탄과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다"며 “향후 노조 집행부의 지침에 따라 강도 높고 일치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3월 9일 주주총회를 통한 배 사장의 연임시도를 원천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파업 돌입 시기는 3월 9일 주주총회를 전후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YTN노조는 MBC노조, KBS 새노조와 연대해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연합뉴스 노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연합뉴스 노조는 현재 이번달 2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박정찬 사장 연임반대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집행부는 이미 지난 15일부터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갔으며 뉴스통신진흥회 앞에서는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3년 간 연합뉴스의 보도는 공정보도와는 거리가 멀었다"며 "국민의 신뢰가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고 밝혔다.

‘언론 파업’의 상징성
MBC 노조가 파업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더 이상 훼손시켜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MBC의 편파적 불공정 방송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이 되어왔다. 특히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후 그런 경향이 더욱 심화됐고 그것이 급기야 파업으로까지 치달은 것이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30년 넘게 문화방송만 바라보고 살았고, 문화방송 기자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최고 방송사로서의 자부심과 경쟁력이 훼손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사태를 관망 중이다. 
하지만 김재철 사상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MBC 파업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조합원들의 높은 동참 열기는 물론이거니와 비조합원인 간부들 역시 적극 동조하고 있다. 그간 MBC의 위상이 점차 추락해 온 이유는 어쩌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자 후배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경계해야할 대목이다. 오직 김 사장의 퇴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최선책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사태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책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파업 참가자들을 징계하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현재의 대응으로는 공영방송의 이미지만 더욱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취재_김성훈 기자